남자는 오늘도 아버지의 오래된 소나타의 뒷좌석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빗줄기들은 마치 그에게로 달려들 듯 세차게 그의 눈 앞을 두드리고 흘러내렸다.
차 안에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건모의 핑계가 흘러나왔다. 시트에서부터 은은하게 올라오는 세월을 머금은 가죽 냄새는, 오늘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빗물로 얼룩진 창문 사이로는 강원도 산골의 작은 마을과, 그 뒤로 안개 속에 희미하게 늘어선 산맥들이 보였다. 매일같이 바라보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강원도 산골의 풍경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의 누나는 옆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얕은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빗길에서의 운전으로 피로하신 듯 멍하니 앞만 보고 운전대를 잡고 계셨다.
“다음 휴게소에서 쉬어가는 게 어때?”그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미동없이 침묵을 지키시다 말했다. “괜찮아. 거의 다 왔어.”
그렇게 그들은 달렸다. 차체를 두드리는 둔탁한 빗소리와 여전히 흘러나오는 김건모의 노랫소리를 배경삼아, 강원도 산골의 풍경을 지나, 휴게소 진입로를 지나, 눈 앞을 스치는 수많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나무와 수풀을 지나 달렸다. 차 안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저절로 굴러가는 차 안에 홀로 남겨져 있는 듯 했다.
터널에 들어서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불행히도 그의 가족들은 모두 아까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터널 안은 달리는 차 하나 없이 한가로웠다. 다만, 이백여 미터 전방에는 하얀색 화물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있었다.
자동차는 아스팔트 마찰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터널 안을 달렸다.
백오십여 미터 전방에는 하얀색 화물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늘도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편히 기댄 채 앞인지 위인지 모를 애매한 공간을 바라보고 계셨다.
백여 미터 전방에는 하얀색 화물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있었다.
남자는 체념한 듯 마음속으로 작게 읊조렸다.
“아버지.”
오십여 미터 전방에는 하얀색 화물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읇조림에 반응하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들 눈앞에는 하얀색 화물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있었다.
그들 눈앞에는 거대한 벽과 같은 어둠이 멈춰서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온 몸이 붕 떠올랐다. 남자는 영원과 같은 어둠 속에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와 세상을 연결짓던 모든 실들이 단번에 툭하고 잘려 나가고, 순수한 그의 영혼과 정신만이 그곳에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자는 깊은 바닷속에 머무는 듯 숨을 참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물에 빠진 사람이 으레 그렇게 하듯 위를 향해 헤엄쳤다. 숨이 멎을 듯한 고통속에서 남자는, 그곳이 위인지 아래인지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헤엄쳤다. 귓가에선 여전히 노랫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남자는 온통 검은색 세게에서 눈을 떴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고막에선 묵직한 심장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은, 장력을 이루다 이내 흘러내린다. 관자놀이 위로 눈물에 뒤섞인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등 뒤로는 서늘한 축축함이 느껴졌다. 온몸은 땀에 젖어 무겁고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다시 한 번, 온통 검은색 세계를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그의 몸은 어느새 정상적인 리듬을 회복하였다. 남자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침대의 왼쪽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구고, 펼쳐진 두 손바닥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단전에서부터 목젖까지 차오른 감정들이 울렁거렸다.
“나는 무엇을 보기 위해서 눈을 떴지?”그가 물었다.
그는 한참동안 생각해보지만, 그의 머릿속엔 어떠한 형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어둠 속에서 일어나 익숙한 동선을 따라 왼쪽으로 다섯 걸음을 옮겼다. 팔을 뻗어 두꺼운 암막 커튼을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반쯤 걷어냈다. 창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햇살들이 그의 시야를 지나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차갑고 어두운 방 안 구석구석으로 빛과 온기가 스며들고, 그의 등 뒤로 어둠속에 자취를 감췄던 사물들이 피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오롯이 그의 발끝에 사선으로 걸친 작은 빛에만 머물러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감옥같은 창살들을 겸비한 회색 건물들은, 매일같은 메마른 하루를 약속하는 듯 했다.
남자는 뒤를 돌아 침대 옆 책상 위에 놓인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10.15. MON. 14:27. 그는 멍하니 서서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파란 불빛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잃어버린 것이라도 있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는 오늘이 매달 참석하기를 권고 받은 정기검진이 있는 날임을 기억했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만, 그는 오늘 해야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멈춰 서서 입고있던 옷과 속옷을 벗어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는 정면에 있는 거울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며 샤워 부스로 향했다. 물을 틀고, 아무렇게나 물방울들이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과 시큼한 살결을 씻겨 주기를 기다렸다.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샴푸 칠을 하고, 거품이 몸에서 씻겨져 나가기를 기다렸다. 샤워를 마치고 그는 벽에 걸린 며칠 쓴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남은 물기를 흩뿌리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는 화장실 앞 건조대에 걸린 팬티 한 장을 집어 입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 화장실과 침대 사이에 놓인 1인용 소파 앞에 멈춰섰다. 소파 위엔 언제 벗었는지 모를 옷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는 고민 없이 가장 위에 놓인 검은색 후드티와 검은색 반바지를 집어입었다. 준비를 마치고 적막한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발 밑에 제멋대로 벗겨져 있는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건물을 나서면서 남자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후드티에 뚫려있는 주머니 사이로 양손을 집어 넣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다.
첫 번째 블럭을 지나치고, 두번째 블럭을 지나쳤다. 남자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서서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치켜 뜨고 앞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의 1 층엔 카페가 있었다. 그리고 카페의 창가에는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여자 한 명이 그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남자는 계속해서 그의 발끝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여자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시선은 카페와 가까워질 수록 더욱 더 그의 머리를 땅으로 짓눌렀다. 카페를 지나치는 순간, 남자는 고개를 돌려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여자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다만 그는 그녀의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에 섬뜩함을 느끼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의 목덜미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차가운 땀방울이 그의 척추를 타고 내려와 엉덩이 골 사이로 흘러내렸다. 남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는 서둘러 눈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도망치듯 여자의 시선을 벗어났다.
큰 길로 향하는 골목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그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더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고, 계단을 내려가고, 역사의 통로 안의 사람들을 지나쳤다. 역무원이 보이는 거리에서는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걸어야만 했다.
평일 오후의 지하철은 한가로웠다. 그는 텅 빈 지하철 칸에 홀로 앉아, 건너편 좌석 위 유리창에 비친 그의 모습을 마주보고 가고 있었다. 굽은 등, 축 쳐진 어깨, 여전히 숙인 고개, 힘 없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머리, 앞을 보기 위해 치켜 뜬 두 눈, 그를 바라보는 텅 빈 눈동자들, 그리고 터널 안 어둠 속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그의 공허한 얼굴.
남자는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지하철 소리를 들으며 그의 몸이 어디론가 운반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멈춰있었다. 그의 세상은 과거의 어느 시간 속에 머무르며 더 이상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의 세상은, 그의 몸뚱어리만 이곳에 남겨둔 채 먼저 죽어버렸다. 세 정거장 후, 남자는 지하철에서 내려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 출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계속해서 쉬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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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어서자 익숙한 공기가 그를 감싸 안으며 그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병원의 에탄올 향기는 어지러웠던 그의 머릿속과 답답했던 가슴을 한결 편안하게 하였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앞으로 걸었다. 병원의 삭막하고 암울한 풍경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그에게 더해주었다. 그는 멀리서부터 그를 수상하게 쳐다보는 직원의 눈을 마주치고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접수처에 도착해 말없이 신분증을 건네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다란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상담 시간과 장소가 적힌 접수증이 나왔다. 그는 정신과가 있는 7 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남자는 의사와의 면담이 있을 진료실 앞에 놓인 네 칸짜리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문 앞에 걸린 디지털 전광판의 두 번째 줄에서 그의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상담 시간까지는 20 분 가량이 남아있었다. 남자는 멍하니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와 두어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를 확인했다. 남자는 그와 같이 검은색 옷을 입고, 머리엔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뒤통수가 의자의 등받이에 닿을 만큼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미소를 짓고 앉아있었다.
남자는 이방인의 낯선 행동에 경계를 올렸지만, 계속해서 그를 관찰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광대와 코끝, 미간의 주름들은 지속적으로 움찔거리며, 누군지 모를 대상에게 그의 표정을 전달하려는 듯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낯선 남자는 벌리고 있던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는 머지않아 입술을 벌벌 떨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울먹였다. 그의 경직된 몸은 기이하게 삐걱대며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듯 했다. 남자는 감고 있는 눈을 더욱 더 질끈 감는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한 후, 이내 눈을 떠 앞을 보았다. 벌컥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낯선 여자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낯선 남자는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지친 눈으로 바라보다, 그녀가 사라지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기나긴 통로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그는 공허함에 이름 모를 그의 친구가 앉아 있던 옆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통로의 양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는 굳게 닫힌 문들. 그 앞에 놓여져 있는 네 칸짜리 의자들. 불이 꺼진 전광판들. 밝게 빛나는 통로 중앙과 대비되는 어둠 속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복도의 끝. 새하얀 벽, 새하얀 천장, 차가운 공기, 공허함을 증폭시키는 귓가에 맴도는 기계음들. 그곳에 그를 위로해 줄만한 것은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그의 모든 감각을 병원의 에탄올 향기에 집중했다. 그의 세상이 시작되었던 그 날의 향기를 천천히 음미했다. 찰나의 달콤함을 뒤로, 거대한 씁쓸함이 그를 뭉게고 지나간다.
슬며시 눈을 떠 앞을 보았다. 네 개의 커다란 눈동자들이 그의 눈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했다. 남자는 그들에게 자신은 괜찮다 말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마치 하나로 합쳐진 듯 단단하게 묶여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그들의 검은자 안에서는 피 뭍은 천에 감싸인 아이 넷이 일제히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